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20-06-09 (화) 19:23
ㆍ추천: 0  ㆍ조회: 210      
IP: 183.xxx.87
제운리(鶴翼洞)와사미리(朱安洞)의 유래

판서공 이헌경(判書公 李軒卿)

판서공 이헌경(判書公 李軒卿)께서는 1851(철종2) 517일 현재 인천 주안3동에서 출생하시어 1874년 갑술 증광시(甲戌增廣試)에 급제하시어 1880년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1896년 중추원 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1900년에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이어서 장례원 소경(掌禮院少卿)을 거쳐 시강원 첨사(侍講院詹事) 1904년 함경남도 관찰사(咸鏡南道觀察使) 1906년 정2품으로 예식원 장례경(禮式院掌禮卿)에 임용되고 뒤이어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시고 벼슬에서 물러나신 후에 기로소에 들어가셨다. 일제가 노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조선 침약을 노골화 하면서 190511월에 이토 히로부미가 특명전권대사로 대한제국에 부임하면서 고종과 대신들을 강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함으로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간섭을 장악하는 국치를 맡게 됩니다. 이러한 격동기에 일제(日帝)는 공()에게 구한말 강제 병합에 협력할 것을 회유하고 작위와 녹봉을 내렸으나 끝내 거부하시고 고난의 삶을 사셨으니 공의 청렴(淸廉)한 삶이 사림(士林)의 미담이 되어서 공의 충절(忠節)과 아름다운 선비가 태어난 고장이라고 해서 동리명(洞里名)을 선비 사() 자와 아름다운 미() 자를 써서 사미리(士美里)로 명명하여 불려오다 1920대 초에 일제(日帝)가 동리 명을 주안정(朱安町)으로 개정하고 해방 후 다시 주안동(朱安洞)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사미를 새미로 불려오면서 현재에 이르러 흔히 "새미"로 불리어 오고 있다.)

 

제운공 이세주선생(霽雲公 李世冑先生)

제운공은 1626(인조4) 76일에 지금의 학익동(鶴翼洞)에서 태어나셨다. 학문이 높았으나 과거에 응하지 않고 오직 40여년을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인륜강상(人倫綱常)과 성훈(聖訓)교육에 힘써 제자중 대과급제가 3인이고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자가 수십인 이다. 1707년 정해(숙종33)에 나라의 큰 경사가 있어 80세 이상 되는 노인에게 작위를 내려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고 그해 겨울에 문하생 현감 윤식(尹植)등이 임금께 공의 교육의 공을 상소하고 1709년 기축(숙종35)에 경연(經筵) 자리에서 정승(政丞) 조상우(趙相遇)가 직접 진달하니 특별히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하고 이듬해 다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從二品)를 제수 받고 삼대(三代)를 추봉(推封)하는 영광을 입었다. 공이 두 번째로 대궐에 나가 임금께 사은(謝恩) 드릴 때 공의 나이 85세로 백발은 소소하나 안색은 소탕(韶蕩)하고 강건하시어 예()를 갖추는데 소년과 다름없어 대신들과 당료들이 말하기를 지상의 신선(神仙)이라 칭송했다.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분향하니 한 고을에 영광이었다. 효행록(孝行錄에 이르기를 )일지기 모친께서 학질 병으로 신음하실 때에 의원의 말이하루 참새 두어 마리씩 백일동안 드시면 쾌차할 수 있다.하니 공이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백일동안 궐하지 않고 드려 치유되셨으니 정성의 감동된 것이지 어찌 약의 효험뿐 이리요. 라 전해진다.

나라에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신 이세주(李世冑)선생의 제운(霽雲)의 호를 따서 동리명을 제운리(霽雲里)라 명명 했으나 1920년대에 일제가 학익정(鶴翼町)으로 개칭하였으며 해방 후 다시 학익동(鶴翼洞)이 되어 현제에 이르고 었다.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제운리를 계운이로 불려오면서 현재에 이르러 흔히 "계운이"로 불리기도 한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9 제운리(鶴翼洞)와사미리(朱安洞)의 유래 운봉(雲峰) 2020-06-09 210
28 계양벡의 외손녀 공예태후 이야기 운봉(雲峰) 2019-08-06 433
27 부평이씨의 관향(貫鄕)과 유래(由來) 운봉(雲峰) 2017-09-11 962
26 ★홍애집(洪厓集)의 저자 이기원(李箕元)공의 일생 운봉(雲峰) 2017-03-25 802
25 청백리(淸白吏:廉謹吏)에 피선되신 충숙공 이세화 선생 운봉(雲峰) 2014-09-23 2048
24 서간첩 연재 중단의 변(辯) 운봉(雲峰) 2014-08-30 1039
23 두번쩨 서간문 [1] 운봉 2013-05-16 1299
22    Re..두번쩨 서간문 총무이사 2018-11-06 106
21 서간문 해석 박상수 2013-05-16 816
20 간찰집 연재 운봉 2013-05-16 901
19 ♣이세화 선생(李世華 先生)의 불여의가(不如意歌) 운봉(雲峰) 2012-12-15 1406
18 15화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신 충숙공 이세화선생 운봉(雲峰) 2012-07-06 1919
17 14화 봉조하 휘 이섭원공의 두 번째 이야기 운봉(雲峰) 2012-03-17 1678
16 황당한 질문을 받았을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세요! [1] 운봉(雲峰) 2012-02-03 1339
15 제13화 봉조하(奉朝賀) 휘 이섭원공의 행장 운봉(雲峰) 2012-01-22 1569
14 봉조하(奉朝賀)공의 행장을 준비하며 운봉(雲峰) 2012-01-06 115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