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9-08-06 (화)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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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벡의 외손녀 공예태후 이야기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이르기를 인종(仁宗)은 고려 제17대 왕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 임원후(任元厚)의 사위이다. 임원후(任元厚)는 부평이씨(富平李氏)5세손인 문하시중(門下侍中) 이 위(李 瑋 : 桂陽伯)의 사위다. 공예태후(恭睿太后)1109년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성은 임()씨이고 문하시중(門下侍中) 임원후(任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녀이다. 왕비가 탄생하던 날 저녁에 이위(李瑋)의 꿈에, 누런 큰 기를 그 집 중문에 세웠는데 깃발이 바람에 날려 선경전(宣慶殿) 치미(鴟尾 궁전의 지붕 네 모서리에 다는 장식)쪽으로 휘날리는 꿈을 꾸었다. 왕비를 낳자, 이위(李瑋)가 특히 사랑하여 말하기를,“이 아이는 뒤에 반드시 선경(宣慶殿)전에서 놀 것이다." 하였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평장사 김인규(金仁揆)의 아들 지효(之孝)와 정혼하였는데, 혼인날 저녁 지효가 문에 이르자 신부가 별안간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어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하고 돌려보냈다. 다음날 병점을 쳤는데 점쟁이가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시오. 이 처녀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게 될 것이니, 반드시 국모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에 이미 이자겸(李自謙)의 두 딸을 왕비로 들여보낸 뒤라 자겸이 그 말을 듣고 미워하여 곧 상소하여 임원후(任元厚)를 개성 부사로 좌천시켰다. 그리고 1년 후에 부사의 부관이, 부사가 있는 청사의 대들보가 벌어져 큰 구멍이 생기고 누런 용이 구멍에서 나오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 부관이 조복을 갖추고 임원후(任元厚)에게 나아가 지난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자세히 하례하여 말하기를, “부사의 집에 반드시 특이한 경사가 있을 것이니, 공은 꼭 알아 두십시오." 하였다.

    또 인종(仁宗)의 꿈에 일찍이 깨 닷 되와 황규(黃葵) 서 되를 얻은 꿈을 꾸었다. 이를 척준경에게 말하니 준경이 대답하기를, “깨는 한자(漢字)로 임()이요, ()은 임() 자와 음이 같으니, () 자 성을 가진 후비를 맞을 징조요, 그 수가 다섯이란 것은 다섯 아들을 둘 상서입니다. ()은 황()과 음이 같으니 임금의 황()과 같은 뜻이고, ()란 것은 바로 규()와 음이 같으니 도()로 다스린다는 의미의 규()와 같고, 황규(黃葵)란 것은 임금이 도로써 나라를 다스릴 상서요, 그 수가 셋이 된 것은 다섯 아들 가운데 세 아들이 임금이 될 징조입니다." 하더니, 그 해몽이 과연 적중하였다.

    척준경의 해몽이 있은 후에 인종 4년인 1126년6월에 역모(逆謀)를 도모한 이자겸(李資謙)의 두 딸인 왕비를 내치고 문충공 임원후의 딸(門下侍中 李瑋의 외손녀)을 간택하여 처음에는 연덕궁주(延德宮主)라고 했다가 의종(毅宗)을 낳자, 인종 7년인 1129년에 왕비로 책봉하고 왕비가 75세에 죽으매, 신종은 어머니의 시호를 공예태후(恭睿太后)라 하였다. 그리고 공예태후의 아들들인 의종, 명종 신종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니 고려 왕후 중 가정 덕이 많고 복이 많은 왕후로 전해지고 있다.

    공예태후(恭睿太后)1127411일에 장남인 의종(毅宗)을 출산하고 1130(인종 8)에는 둘째 아들인 대녕후 왕경(大寧侯 王璟), 다음해 1017일에는 셋째 명종(明宗)을 낳았다. 이후 원경국사(元敬國師) 충희(沖曦), 1144(인종 22)에 다섯째 신종(神宗)을 출산하고, 승경(承慶) · 덕녕(德寧) · 창락(昌樂) · 영화(永和) 4명의 궁주(宮主)를 낳았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예종116월 김경용(金景庸 : 평장사 김인규(金仁揆)의 아버지)을 수태사 낙랑후(守太師樂浪侯), 이위(李瑋)를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守太保 門下侍中 判尙書吏部事), 이자겸(李資謙)을 문하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 판상서병부사에 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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