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4-09-23 (화)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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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淸白吏:廉謹吏)에 피선되신 충숙공 이세화 선생

       시조 충민공(忠敏公)의 18대손인 충숙공(忠肅公) 이세화선생 연재를 일 년여 만에 다시 시작하는 첫 번째 시간에는 충숙공(忠肅公)깨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신 과정을 왕조실록(王朝實錄)과 선생의 신도비명(神道碑銘)과 행장(行狀)을 토대로 조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영의정(領議政) 두 번 지낸 것 보다 교리(校理) 한번 지낸 조상이 더 자랑스럽다 했으며 교리(校理)가 청직(淸職)이 때문인데 그 교리(校理) 세 번 지낸 것보다도 청백리로 록선(錄選)되는 영광이 더 크다 하였으니 당시의 가문의 최대 영광을 가늠케 하는 말일 것입니다.

      조선 전후기를 통해 청백리에 녹선된 수는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만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 ≪전고대방 典故大方≫에는 218명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조선 초·중기에는 생존자 가운데서 선발하여 염리(廉吏)로 대우하였고, 후기에는 염리로 녹선(錄選)되었다가 사망한 자나 사망한 자 가운데서 염명이 높았던 관리를 청백리(淸白吏)로 녹선하여 우대하였습니다. 선발 과정은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의 수장이 천거하고 임금의 재가를 얻어서 의정부에서 뽑았습니다. 이상의 청백리로 록선된 분 중에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한 분이 다섯 분인데 우리 충숙공(忠肅公)이 그중에 한 분이십니다.

       왕조실록 숙종29권 21년(1695) 7월 11일자에 이르기를 “묘당(廟堂)에서 청백리 염근리를 초선(抄選)하여 계하(啓下)하였는데 청백리(淸白吏)에 고(故) 영의정 이시백(李時白)등과 염근리(廉謹吏)에 피선된 사람은 호조판서(戶曹判書) 이세화(李世華) 부호군 강세규로 가자(加資)를 명하였다.” 하였습니다. 충숙공께서는 염근리로 피선된 사실이 관보(官報)에 실린 것을 보시고 곧바로 선발에 부당함을 임금께 상소문을 올리셨으니 이로 미루어 공의 충성 청렴 강직 겸양의 마음을 그대로 뵙는 듯하여 여기에 그 상소문을 실어서 충숙공의 고결하신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


염근(廉謹)으로 선발된 후 임금께 올린 상소문

     엎드려 아뢰나이다. 신이 어제 관보를 보니 신의 이름이 청백리를 선발하는 속에 들어 있사오니 진실로 놀랍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신은 본시 궁색한 선비로 일찍이 과거에 올라 임금님 은혜를 흠뻑 입어 편안하게 부귀를 누려서 들어가면 집이 있고 나서면 말(馬)이 있으며 옷이 있어 추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음식이 있어 주림을 근심치 않사오니, 스스로 분수를 헤아려도 지나침이 이미 극에 이르렀는데 청렴한 자가 과연 이와 같으오니까.

     신이 관직에 올라 두루 직책을 맡은 지가 지금까지 삼십구 년이옵니다. 다섯 번 주(州)와 부(府)의 수령을 맡았으며 여섯 번 관찰사를 지냈으나 한갓 영화와 총애를 훔치고 조금도 보답함이 없사오니 하는 일 없이 국고만 축냈다는 벌을 받아도 마음에 달게 여길 바인데, 이같이 감당하지 못할 이름은 신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바일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만분의 일도 비슷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며, 실상이 없다는 말이 조정에까지 이르고 전하께 까지 들리게 될 것이옵니다.

     신은 아무리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이같이 드물고 넓은 은전이 신에게 내리시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아, 뜻밖의 명예라는 것이 예부터 간혹 있다고 하오나 지금 신의 당한 경우는 고금에 듣지 못한 바이오며 이치로도 그렇게 못하오니 신이 무슨 면목으로 관청에 서고 재상 반열에 참례하여 조정을 욕되게 하며 안팎의 웃음을 끼치오리까. 신의 처지가 만분 황송하여 부득이 죽기를 무릅쓰고 호소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밝게 굽어 살 피사 빨리 유사(有司)에게 명하시어 신의 이름을 초계(抄啓)중에서 삭제하시어 사사로운 분수를 편안케 하시고 나라의 체면을 중하게 하시면 천만 다행이겠나이다. 신은 감격스럽고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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