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2-12-15 (토) 17:23
ㆍ추천: 0  ㆍ조회: 1260      
IP: 220.xxx.2
♣이세화 선생(李世華 先生)의 불여의가(不如意歌)

    쌍백당 이세화 선생께서 1673년(현종14)과 1678년(숙종4)에 이어 1688(숙종14)세 번씩이나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셨는데 무진년에 궁방(宮房)의 절수사(折受事:궁인이나 왕족의 토지 내수)령이 경상도에 내려오니 관가의 세금은 줄고 차인(差人:집행하는 사람)들의 행패가 극심하여 그들을 잡아다가 곤장을 쳐 내쫒고 민폐가 큰 것을 임금께 아뢰어 절수제도의 개선을 건의하니 임금이 노하여 즉시 해임의 명을 내렸으나 宰相 南九萬등의 간곡한 만류로 명을 거두셨으나 1689년(숙종15) 기사년 이른 봄에 여러 번의 사직 상소를 올리고 고향인 파주로 돌아 오셨다.

돌아오시자마자 四月에 중전(인현왕후)을 폐출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내가 삼조(三朝:효종 현종 숙종)의 은혜를 입었는데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을 곳을 찾았다〉하시며 즉시 대궐로 들어가 전임 판서 오두인(吳斗寅) 응교 박태보(朴泰輔)등과 상소문을 작성하여 팔십 여인의 랑료(郞僚)가 속속 모여들어 연명으로 중전의 폐출의 부당함에 상소를 올리고 궐 밖에서 비답을 기다리던 중 임금이 크게 노하여 밤 이경에 이르러 친국(親鞫)을 명하니 궐내의 불빛을 대낮같이 밝히고 호령소리 땅을 뒤흔드니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었다. 임금이 박태보에게 상소를 쓴 자가 누군가 하고 물으니 공께서 대답하시기를 『박태보는 다만 붓을 잡았을 뿐 글은 신이 지었습니다.』하니 임금이 더욱 노하여 심한 고문으로 몇 번의 혼절을 거듭하면서 항거하며 아뢰기를 『신의 평생소원이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온데 이제 그 뜻을 이루게 되었사오나 전하의 성덕에 혹시 루가 될까 두렵사오니 신하들의 죄는 옥리(獄吏)에게 맡겨도 될 것이 온데 밤이 새도록 친국을 하시니 혹시 옥체에 손상이 있으실가 걱정이 되옵니다.』하시니 세상 사람들이 형간(刑諫:형벌을 받으면서도 임금께 간하는 것) 이라 했다.

다음날 사형을 감하여 정주(定州:平安道)로 귀양을 명하니 들것에 실려 칠일 만에 금천(金川:黃海道)에 당도 했으나 병이 더욱 심하여 말도 못하고 숨쉬기도 곤란하여 갈 길을 멈추고 침과 약을 복용하니 하늘의 도움이 있어 조금 회복하여 다시 출발 한 달 만에 배소(配所)에 도착하였다. 판서 오두인은 의주로 유배 도중 파주에서 졸하였고 박태보는 진도로 유배 도중 노량진에서 졸하니 기사환국의 이 세분을 일컬어 삼학사(三學士) 또는 삼충신(三忠臣)이라 칭송하고 있다. 공께서는 방폐(放廢:귀양에서 풀려남)되신 후에 지으신 글이 모두 귀중하여 시 한편이 나오면 사람마다 다투어 서로 전하더니 다음 소개하는 불여의가(不如意歌) 한 편은 당시에 시단을 석권하여 서울 장안에 종이 값이 오를 지경 이였다고 쌍백당집(雙栢堂集)에 서문을 쓴 공조판서 후에 좌의정을 역임한 조태억(趙泰億)이 전하고 있습니다. 파산선영하에 계실 때 광탄(廣灘)에는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가 살았고 임진 장단(臨津長湍)에는 나계(蘿溪) 조사석(趙師錫) 두 정승들과 임진 화석정(花石亭)에서 당시 교류하며 남기신 시문들이 대부분 쌍백당집(雙栢堂集)에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불여의가(不如意歌) 한편을 소개하며 당시 공께서 처해 계셨던 상항이 이 시 한편에 담겨있는 듯 보입니다.

                                불여의가(不如意歌)    
                                      이세화(李世華)
     邵城太守饋遺厚  소성 태수는 선물도 많이 받으면서
     一壺猶慳慰病  병든 늙은이 위로함에 술 한 병 인색하고
     磚石故人有風情  전석동(磚石洞)의 친구는 풍류 정취 있지마는
     再封香醪還自取  두 번 봉한 좋은 술은 도리어 자기가 가져가니
     高陽酒徒不須說  고양 땅 술꾼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一度塞責無其後  한번 빚 갚고는 그 후론 다시없네
     東陽舊卒今遞  동양의 옛 원님 지금은 바뀌었으니
     未復門投小瓿  다시는 사립문에 술병 던지지 않는구나.
     士和何事斷消息  사화는 어인 일로 소식이 끊기고
     楚老何事南州走  초로는 무슨 일로 남주로 달아났나.
     梨川老翁頗嗜飮  이천의 늙은이 제법 마시기 즐기지만
     日日來訪猶空手  날마다 올 때는 빈손으로 찾아오네.
     馬山尹公來倒缸  마산의 윤공 오기만 하면 술독 바닥내고서
     携壺有約終年負  술 가져온다. 약속하고 연말 돼도 안 지키네.
     萬事從來不如意  만사가 예로부터 뜻과 같이 안 되니
     安得人間知己友  어찌하면 인간의 지기우(知己友)를 만날까
     柴門晝掩簞瓢磬  낮에도 사립문 닫고 양식조차 비었으니
     得魚未能謀諸婦  고기 생겨도 아내보고 술 달라 못하겠네.
     文園病渴樽杓空  문원(文園)처럼 소갈병 들었어도 술단지는 비었으니
     虛吸前川水一斗  앞개울 물이나 한 말쯤 마시리라
     願作韓公屋上火  원컨대 한공(韓公)의 옥상화(屋上火) 되어
     吸盡桃花數斛酒  도화주(桃花酒) 몇 섬을 다 마셔 보리라
     不然寄托水標橋  아니면 수표교 아래
     下皮公家        피공(皮公)집에 몸을 맡겨
     日日餘瀝能沾喉  날마다 버려지는 술지미로 목이나 축일까
     古來賢達皆如此  예로부터 현인(賢人)과 달인(達人)이 모두 이와 같으니
     君不見瓮間盜飮  그대는 독 틈에서 훔쳐 마시던
     畢吏部          필 이부를 보지 못했나.

* 문원(文園): 효문원령(孝文園令)을 지낸 한(漢) 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사마상여가 소갈병을 앓았다.
* 필 이부(畢吏部): 이부랑(吏部郞) 벼슬을 한 진(晉)나라의 필탁(畢卓)이다. 필 탁이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으면서 늘 술에 젖어 직무(職務)를 소홀히 하였는 데, 하루는 이웃집 동료 낭(郞)의 집에 술이 익자 필탁이 취한 김에 가서 술을 훔쳐 마시다가 관리자에게 붙잡혔다. 주인이 아침에 보니 필 이부(畢吏部)였으 므로 포박을 풀어 주고 같이 술을 마셨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6 부평이씨의 관향(貫鄕)과 유래(由來) 운봉(雲峰) 2017-09-11 320
25 ★홍애집(洪厓集)의 저자 이기원(李箕元)공의 일생 운봉(雲峰) 2017-03-25 459
24 청백리(淸白吏:廉謹吏)에 피선되신 충숙공 이세화 선생 운봉(雲峰) 2014-09-23 1782
23 서간첩 연재 중단의 변(辯) 운봉(雲峰) 2014-08-30 877
22 두번쩨 서간문 [22] 운봉 2013-05-16 888
21 서간문 해석 박상수 2013-05-16 663
20 간찰집 연재 운봉 2013-05-16 799
19 ♣이세화 선생(李世華 先生)의 불여의가(不如意歌) 운봉(雲峰) 2012-12-15 1260
18 15화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신 충숙공 이세화선생 [10] 운봉(雲峰) 2012-07-06 1727
17 14화 봉조하 휘 이섭원공의 두 번째 이야기 운봉(雲峰) 2012-03-17 1573
16 황당한 질문을 받았을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세요! [1] 운봉(雲峰) 2012-02-03 1224
15 제13화 봉조하(奉朝賀) 휘 이섭원공의 행장 운봉(雲峰) 2012-01-22 1406
14 봉조하(奉朝賀)공의 행장을 준비하며 운봉(雲峰) 2012-01-06 1089
13 12화일제의 회유를 끝내 거부하신 판서공(判書公) 운봉(雲峰) 2011-07-30 1945
12 제11화 대간들의 탄핵으로 곤욕을 치른 정승들 운봉(雲峰) 2011-07-05 1421
11 제10화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臺諫)들 이야기 운봉(雲峰) 2011-05-23 172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