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2-07-06 (금)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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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신 충숙공 이세화선생

   이번 제15화에서는 조선조에서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시고 팔좌구경(八座九卿)을 거쳐서 이미 이름이 금구(金甌:정승자리)에 올라 머지않아 재상(宰相)에 오를 즈음에 연로(年老)하심을 구실로 43여년의 벼슬길에서 용퇴(勇退)하신 우리 문중의 위인(偉人) 십구세 충숙공(忠肅公) 쌍백당(雙柏堂)의 큰 발자취의 여정을 일가 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충숙공의 크신 유업을 조명함에 있어 몇 회분의 연제로는 불가하므로 여기서는 충숙공의 문집 쌍백당집(雙柏堂集)에서 몇 편의 상소문(上疏文)과 시문(時文)을 발췌해서 소개해 드림으로서 큰 어른을 이해하시는데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시 부평이씨는 고려개국벽상공신 태사(高麗開國壁上功臣太師)이신 휘 이희목(李希穆) 충민공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사세조(四世祖) 문충공(文忠公) 휘 정공(靖恭) 오세조(五世祖) 장숙공(壯肅公) 휘 위(瑋) 부자(父子)분이 이어서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셨고 장숙공의 형님 휘 숙(璹)께서는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아우님 되시는 휘 순(珣)께서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로 네 부자분이 총재와 재상으로 여조(麗朝)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삼십여 분이 대과에 급제하여 충정과 청렴으로 대대로 우국봉공(憂國奉公)하셨으며 세 분의 충신과 수많은 효자 열려(孝子烈女)로 충효의 모법을 보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십구세 충숙공 휘 이세화(李世華)께서 가문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셨으니 예로부터 영의정(領議政) 두 번 지낸 것 보다 교리(校理) 한번 지낸 조상이 더 자랑스럽다 했습니다. 교리(校理)가 청직(淸職:淸官)이 때문인데 그 교리 세 번 지낸 것보다도 청백리로 록선(錄選)되는 영광이 더 크다 하였습니다.

   1695년(숙종21) 7월에 지경연(知經筵)및 세자빈객(世子賓客)으로 계실 때 청백리로 록선 되셨는데 공께서는 관보에 청백리(淸白吏)로 선발된 것을 보시고 곧바로 아래와 같은 “상소문”을 임금께 올리신겻으로 미루어 보아 충숙공의 고고한 겸양과 충정을 새삼 우러러 보게 합니다.

       ◎염근(廉謹)으로 선발된 후에 임금께 올린 상소문
   엎드려 아뢰옵니다. 신이 어제 관보(官報)를 보니 신의 성명이 염근(廉謹:청백한 사람)을 선발하는 속에 들어 있사오니 진실로 놀랍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신은 본시 궁색한 선비로 일찍이 과거에 올라 임금님 은혜에 파묻혀 편안하게 부귀를 누리오니, 들어가면 집이 있고 나서면 말(馬)이 있으며 옷이 있어 추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음식이 있어 주림을 근심치 않사오니 스스로 분수를 헤아려도 지나침이 이미 극에 이르렀는데 염근한 자가 과연 이와 같으오리까.
   신이 집을 나서 관직에 나선지 삼십 구년이옵니다. 다섯 번 도와 군을 맡았으며, 여섯 번 깃발을 세웠으나 한갓 영화와 사랑을 도적질하였고 조금도 보답함이 없사오니 국고만 축낸 죄가 작지 않사온데 이같이 감당하지 못할 이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바이옵고 사람들은 만에 하나라도 적합지 않은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며 적당하지 않다는 말이 조정에 이르러 전하께 까지 미칠 것이옵니다.
   신은 아무리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이같이 드물고 넓은 은전이 신에게 내리시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슬프오이다. 예부터 뜻밖의 명예가 혹시 있다고 하오나 이제 신의 경우는 고금에 듣지 못한 바이고 이치로도 그렇지 못하오니 신이 무슨 면목으로 관청에 서고 재상반열에 참여하여 조정을 욕되게 하며 안팎의 웃음을 끼치오리까.
   신의 처지가 만분 황송하여 부득이 죽기를 무릅쓰고 호소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밝게 굽어살피시어 유사(有司)에게 명하시어 신의 이름을 초계(抄啓) 중에서 삭제하시어 사사로운 분수를 편안케 하시고 나라의 체면을 중하게 하시면 천만다행이겠나이다. 신은 격절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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