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2-03-17 (토)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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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봉조하 휘 이섭원공의 두 번째 이야기

     전 시간에는 영조께서 친히 숭정전(崇政殿)에 납시어 선마(宣麻)한 뒤에 치사(致仕)한 공을 전송하는 장면을 실록(實錄)을 토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봉조하(奉朝賀)공께서는 26세 되시는 1726년(영조2)에 생원시에 합격하시고 십년 뒤인 영조12년 37세의 늦은 나이로 정시(庭試)에 등과하시어 이듬해 3월 18일 다시 중시(重試 :당하관 이하의 문무관에게 10년마다 한 번씩 보게 하던 과거 시험으로 급제하면 성적에 따라 관직의 품계를 당상관까지 올려주던 시험)에서 장원(壯元)을 하여 승문원(承文院) 정9품 정자(正字)에서 성균관(成均館) 정육품 전적(典籍)으로 특진하시고 그해 연말 도정(都政:정기 인사.)에서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정5품)에 오르셨으니 10여년이 걸리는 정5품을 단 2년 만에 승차하신 것입니다.

     뒤이어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양사의 장령(掌令) 집의(執義) 사간(司諫)을 지내시고 시강원(侍講院) 보덕(輔德) 그리고 장악원정(掌樂院正)을 거쳐 잠시 울산부사(蔚山府使)로 나가 다섯 달 만에 치적이 뛰어나 칭송이 자자했으나 부모님 곁을 오랫동안 떠나가 있었기에 벼슬을 내놓고 시 한수를 남기고 돌아오니 법에 따라 파직되셨습니다.

   『한 되의 양식이면 나의 아침저녁 식사에 족하고(一升吾足兩時廚) 작은 집이지만 바둑 두고 책 읽으면 즐거운데(矮屋碁書亦自娛) 북쪽에 계신 어머님 편안하게 봉양 못하고(祗爲北堂闕牲養) 부질없이 남쪽에 와서 관직을 맡고 있구나(謾來南國管魚符) 때로는 순찰하는 병사(兵使) 수사(水使)의 고함소리에 놀라고(時驚大喝巡兵水) 날마다 세금 독촉하는 관로들이 미워지네(日壓催徵武鎭奴) 밤에 침상에 누어 집에 돌아갈 결심을 했으니(夜宿雩壇歸計定) 이러한 내 계획이 완전한 어리석음만은 아니리라(此儂謀己不全愚)』

      다시 사헌부 집의(執義)에 임명됐으나 당시 대조(大朝)와 소조(小朝:세자섭정)간 불화로 정계가 어지러워 외직을 구하여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나갔으나 다시 집의(執義)에 임명되고 이듬해인 영조32년에 춘방(春坊:시강원)에 들어가 응제(應製 :임금의 특명으로 임시로 치르던 과거)의 수석(首席)을 차지해 당상(堂上)인 통정대부로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셨으니 삼십 여년이 걸리는 당상(堂上:정삼품)의 품계(品階)를 불과 이십 년 만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치셨으나 아우님 되시는 충희공께서 승지로 계실 때 사도세자의 망극한 변을 당하여 눈물로 극력 간하다가 엄한 벌로 귀양을 가게 되니 벼슬을 내놓으시고 고양(高陽) 농막에 은거(隱居)하셨습니다. 나라에서는 대사간에 임명했으나 나가지 않자 임금의 하교가 지엄하여 부득이 상경했다가 열흘도 못되어 다시 고향에 돌아오셨다.

     영조40년 7월 19일 육십세 이상의 시종신(侍從臣)에게 기로과(耆老科)를 설치하고 나라에서 상경하기를 재촉하니 시험에 나가 일등을 하여 한 자급을 더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시니 중시(重試)와 응제(應製)에 이어 세 번 식이나 수석(首席)을 하여 재상(宰相) 반열에 오르신 것은 뛰어난 문장 때문이라고 모두가 감탄하며 부러워하였습니다. 문장과 재덕이 이와 같았으나 지위가 겨우 아경(亞卿:종이품)으로 대제학(大提學)을 못하시고 고향에 내려와 바위를 의지하고 지내셨으니 비록 한은 되나 세상의 공론이 문장과 청백으로 편안히 치사(致仕)한 신하라고 모두 공을 칭송하였습니다.

    영조47년 팔월 구일에 별세하시니 향년 71세 이시며 임금께서 부음을 들으시고 매우 슬퍼하시며 부의(賻儀)를 명하고 친히 제문을 다음과 같이 지으시고 예관을 보내 조상케 하셨다.

 『슬프다! 오직 경은 조상 때부터 벼슬한 집안이로다(嗚呼惟卿乃祖世閥) 늦게 등과 하였으나 조정에 선지 몇 십 년인고(晩後登科立朝幾十) 중시로 입시한 것이 황연히 어제 같은데(重試入試恍然若昨) 대궐에 와서 선마(宣麻)식을 한 것은 경인년 정월 이였네(臨門宣麻庚寅正月) 서울이 가까운 한가한 이곳은 경이 스스로 정한 곳이고(閉處近畿於卿自得) 그 후에 경의 아우는 특별히 발탁하여 등용하리라(其後卿弟特爲陞擢) 인하여 사마를 제수하면 가히 융숭한 대우라고 할 수 있겠고(仍授司馬可謂隆渥) 당상관과 아경이 다함께 애도하는 글을 지었도다(緋玉亞卿但皆製述) 한번 불러들여 보고 싶고 지척에 있다고 했는데(一欲召見謂在咫尺) 어찌 이런 소식이 들려오니 내 마음 항상 슬프고 애석하도다(何聞此報予庸悼惜) 형제가 서로 의지하였으니 칠십세와 육십세이고 (昆弟相依七十六十) 내 마음 이와 같은데 경의 동생은 얼마나 슬플꼬(予心若此爲卿弟惻) 이 고을에 부의를 더 보내고 예관이 친히 술을 따르니(本郡加賻禮官親酌) 경의 영혼이 알았거든 나의 정성에 감동하여 흠양하라(卿靈有知感予歆格) 』 이상의 제문의 내용을 보아 영조임금의 봉조하(奉朝賀) 공에 대한 사랑을 가늠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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