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자 운봉(雲峰)
작성일 2011-07-05 (화)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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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대간들의 탄핵으로 곤욕을 치른 정승들
      먼저 10화에서 밝혔듯이 대간(臺諫)들의 간쟁(諫諍)과 언로(言路)는 당시 왕권정치에서 국왕의 전횡(專橫)을 막고 도덕 정치의 구현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정승들도 예외 없이 대간들의 극간(極諫)과 탄핵(彈劾)으로 평생을 바쳐서 쌓아 올린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거나 그로 인해 끝내 사임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성종(成宗)과 그의 아드님 연산(燕山) 양대에 걸처 정치중심에서 국정을 운영했던 상신(相臣)으로 노사신(盧思愼), 성준(成俊), 한치형(韓致亨), 이극돈(李克墩), 정문형(鄭文炯), 어세겸(魚世謙) 과 같은 당대의 명신(名臣)들이 대간(臺諫)들의 극간(極諫)으로 곤욕을 치른 사례를 밝혀 드리면서 그간 4회에 걸친 <좌윤공의 행적〉을 마치고저 합니다.

    첫 번째는 연산 3년 7월초 좌의정 어세겸(魚世謙), 우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찬성 이극돈(李克墩), 우찬성 성준(成俊),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문형(鄭文炯)등의 상신(相臣)들이 6월부터 1개월여에 걸쳐서 대간(臺諫)의 끈질긴 탄핵(彈劾)과 논박(論駁)으로 수차에 걸쳐서 임금께 사직소를 올렸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자 7월초에 이르러 다시금 연명으로 사직소를 올리게 되니 임금은 어서(御書)를 내리면서 이르기를, “여러 번 사직서를 올리고 오랫동안 그 직위를 비워두니 정사에 어긋남이 많으니 대간들의 논박에 구애하지 말고 빨리 등청하여 나의 명을 받아서 정사에 더욱 조력하여 정진토록 하오.”하면서 재상들을 격려하는 예입니다

   두 번째는 조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성종 조에서 좌의정을 지내고 연산1년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에 오르기까지 왕조의 기본법전인《경국대전》을 최항과 함께 편찬을 총괄하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와《동국여지승람》을 서거정과 함께 편찬한 당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노사신(盧思愼)도 대간(臺諫)들의 탄핵(彈劾)을 비켜가지는 못했습니다.

   노사신이 직접적으로 탄핵을 받게 된 동기는 판관(判官)임기가 만기되기 전에 4품으로 승진하는 채윤공을 비호했다는 일로 사간원 정언 조순으로부터 논박(論駁)을 받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같이 작은 일로 시작된 언관과 정승사이에 분쟁이 수차에 걸친 공방 끝에 급기야는 7월 18일 정언 조순이 경연(經筵) 자리에서 임금께 아뢰기를 "신 등이 사신(思愼)을 논박하였으니, 사신은 당연히 대죄(待罪)하느라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도리어 대간을 지적하여 말하기를 ‘남을 고자질해서 곧다는 이름을 취하려고 한다.’ 하고, 또 ‘이러한 풍속은 옛날에도 듣지 못한 것이니 불가불 개혁해야 한다.’ 하니, 그 간휼함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법사(法司)에 내려 국문하게 하소서.” 왕이 끝내 답하지 않자

   다시 7월 21일 조순이 또 아뢰기를 “지금 신 등에게 ‘대신을 경멸한다.’ 하는데, 신 등이 어찌 대신을 경멸하리까. 사신(思愼)이 상의 앞에서 대간의 논박을 당했으면 대죄(待罪)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 온데, 도리어 대간더러 ‘고자질을 해서 곧다는 이름을 취득하는 짓이다.’고 하니, 이는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자기 말만을 믿게 하기 위해 감히 가슴속의 음모를 드러낸 것입니다. 춘추(春秋)의 법을 말하면 사신의 죄는 비록 극형(極刑)에 처해도 도리어 부족하옵니다. 신 등은 그의 살덩이를 씹고 싶습니다.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인신(人臣)으로서 누가 군상(君上) 앞에 직언을 할 자가 있겠습니까?”하였다.

   이상과 같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조순의 극간(極諫)은 끝내 임금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하옥(下獄)되는 신세가 됩니다. 노사신도 이 일이 있은 지 1년 후인 9월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탄핵사건으로 큰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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