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과에 합격한 자에게는 붉은 색의 합격증인 홍패를 주었으며, 생진시에 합격한 자를 단순히 합격자라고 하였고 문과나 무과에 합격한 자들은 급제자라고 칭하였다. 식년 문과에서는 복시에서 급제자 33인을 선발하고 왕이 직접 전시에서 그 등급을 결정하였다. 문과에서 이 33인의 복시 급제자는 장원 1인을 포함하는 갑과 3인과 을과 7인, 병과 23인으로 전시를 통하여 구분되었다. 이 급제자들에게는 각각의 과에 해당하는 품계나 관직이 주워지게 되어 있었다. 문과의 경우에는 그 명칭에 다음과 같은 변경이 있었으며, 문과의 갑과 급제자 중 1등은 장원, 2등은 방안, 3등은 탐화랑이라고 하여 특별히 우대하였다. 이 중에서 3등 탐화는 왕으로부터 어사화를 받아 문과 급제자들의 모자에 꽂아주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문과 장원의 경우에는 바로 참상관(종6품에서 당하관)의 실직에 임명되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것으로 일반적인 관료가 정상적으로 승진해서 올라가려면 약 7년이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었다. 장원급제자가 받은 혜택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참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올라가는 매우 어려운 선을 단숨에 넘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미 현직의 벼슬 있는 자들이 당하관 이하의 관리가 응시할 수 있었던 식년시나 중시 등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을 경우에 특히 당하관에서 당상관으로 올라가는 경우에 유효하게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과거를 통하지 아니하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당상관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인품과 자격 검정 및 가문 심사를 통과하거나 왕의 특별한 어명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양반 관리가 아무런 난관 없이 종9품에서 정3품의 당하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약 41년이 필요하였다. 이것은 20세에 관직에 나아갔을 경우에 약 60세가 되어서야 정3품 당하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여기에서 당상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만 하였다. 과거나 승진에 있어서 문벌이 가지는 중요성은 매우 높았다. 당상관 이상의 고급 관료들은 대부분 문벌의 자제들이였으며, 그들이 다시 그 자신들의 자식을 높은 지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또 조선 후기에 들면서 문벌과 함께 급제자의 앞날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분관 이였는데 분관이란 급제자를 홍문관,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 등의 사관에, 무과는 훈련원과 별시위에 분속되었다. 조선 초에는 급제자의 능력에 따라 분관이 이루어졌지만 후기에는 문벌의 힘이 많이 작용하게 되었으며, 사관 중 홍문관이 가장 선호되었다. 사관은 모두 과거 시험의 조직과 진행 과정을 주관하던 관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