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 소재지 : 경기도 오산시 서2동 산66

  

부제학공의 정려

 

 이상제(李尙載) 자는 문거(文擧) 1607년 정미(선조40)에 나시어 1630년 경오(인조8)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3년 계유(인조11)에 명경(明經)으로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저작(著作)에 임명되고 다음해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를 거쳐 1636년 병자(인조14) 8월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으로 나가셨다. 이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忠淸監司 鄭世規)가 임금이 계시는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출정에 앞서 활솜씨와 병법에 능한 공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았다. 광주 험천(廣州 險川) 전투에 참전하시어 많은 전과를 거두시고 장렬히 순절하시니 당시 연치 27세이시다. 임금께서 특명으로 홍문관 교리 겸 경연 시독관(弘文館校理兼經筵侍讀官)으로 증직하고 뒤에 통정대부 홍문관 부제학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通政大夫弘文館 副堤學 知製敎 兼 經筵參贊官)으로 증직하고 정려(旌閭)를 내렸다.

  

정여내부 편액

  

이상재 선생의 행장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