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년 계유(인조11)에 명경(明經)으로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저작(著作)에 임명되고 다음해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를 거쳐 1636년 병자(인조14) 8월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에 임명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忠淸監司 鄭世規)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광주 험천(廣州 險川) 전투에 참전하시어 많은 전과를 거두시고 장렬히 순절하시니 연치 30세이시다. 특명으로 홍문관 교리 겸 경연 시독관(弘文館校理兼經筵侍讀官)으로 증직되고 뒤에 통정대부 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通政大夫弘文館 副堤學 知製敎 兼 經筵參贊官)으로 증직되고 나라에서 충신의 정려(旌閭)를 내렸다. 공께서 승문원(承文院) 저작(著作)으로 계실 때 중국 사신 강학사가 공의 의젓한 용모와 당당한 기상을 존경하여 공의 시를 구해가서 황화집(皇華集:청국왕의 문집)에 실었다. 시(詩)의 원문은 대동보 상권에 부제학공 행장(行狀)에 실려 있다.

 

副堤學公 諱 李尙載 墓域(前面  孫子 諱 廷師의 碑石)

소재지 : 경기도 오산시 서리 산66

 

副堤學公  旌閭

소재지 : 경기도 오산시 서리 산66

 

副堤學公  旌額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