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년 갑자(선조37)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의리를 중히 여기고 지략이 뛰어나 말 타기와 활쏘기 재주가 있었는데 마침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가 원도(猿島:원도는 강화와 남한산성을 잇는 요충지)까지 침입하니 공께서 많은 의병을 모아 『우리는 비록 군인은 아니나 국가의 위기를 피할 수 없으니 한 놈을 죽이고 죽더라도 나라를 위해 함께 나서자』하며 활을 쏘니 공이 쏘는 화살에 쓰러지지 않는 놈이 없어 처음에는 퇴각했으나 화살이 다함을 알고 섬으로 엄습해오니 젊은이들은 다치고 전사하고 달아나 홀로 분전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때는 1637년 정축(인조15) 1월 25일이다. 부인 금천 강씨(婦人衿川姜氏)는 공의 전사 소식을 듣자마자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자진했다. 조정에서 부인에게 열녀(烈女)의 정려(旌閭)를 명하고 공에게는 충무위 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내리고 1862년 임술(철종13)에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겸 경연 참찬관(兼 經筵參贊官)에 증직되고 나라에서 그 충절을 기려 정려(旌閭)를 명했다.  정려(旌閭)는 1990년 11월 16일 인천시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4호로 지정되었고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442에 위치해 있다.

 

承旨公 諱 李允生 墓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104

 

承旨公 諱 李允生의 旌閭

정려 소재지 :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442

 

旌閭內 額板

 

文化財 案內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