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 이헌경 존영

1874년 갑술 증광시(甲戌增廣試)에 합격 1880년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1896년 중추원 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1900년에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이어서 장례원 소경(掌禮院少卿)을 거쳐 시강원 첨사(侍講院詹事) 1904년 함경남도 관찰사(咸鏡南道觀察使) 1906년 정2품으로 예식원 장례경(禮式院掌禮卿)에 임용되고 뒤이어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시고 벼슬에서 물러나신 후에 기로소에 들어가셨다. 일제가 공(公)에게 구한말 강제 병합에 협력할 것을 회유하고 작위와 녹봉을 내렸으나 끝내 거부하시고 고난의 삶을 사셨으니 이는 공의 구대조 되시는 청백리(淸白吏)이신 충숙공(忠肅公)의 후예(後裔)의 표상이었음이리라. 사림(士林)의 미담이 된 공의 충절(忠節)과 아름다운 선비가 태어난 고장이라고 해서 동리명(洞里名)을 선비 사(士) 자와 아름다운 미(美) 자를 써서 사미리(士美里)로 명명되어 불려오다 일제가 동리 명을 주안정으로 개정하고 해방 후 다시 주안동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공께서 1924년 융희황제(隆熙皇帝) 망육년(望六年)에 기로제재신(耆老諸宰臣)들과 갱진시(賡進詩)를 올렸는데 여기에 그 시문(詩文)과 기로재신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소개한다.

 

 

西樓繼 四聖題 牒又今年臣敢

        追先祖拜 恩南極天

                            正二品 李軒卿

 

서루(西樓)에서 네 분 임금 뒤를 이어서

올해 또 첩지(牒紙)를 쓰게 되었네. 신은 감히

선조(先祖)의 뒤를 이어서 남극(南極) 하늘의

은혜에 절하며 사례한다네.

                     정이품 이헌경(李軒卿) 지음

 

 

 

 

◀ 어제갱진첩

    당시 기로재신 17분의 갱진시를 모아 놓은

    어제갱진첩(御製賡進帖)으로 어제갱진첩을 클릭하면

    내용을 볼 수 있음.

 

 

 

 

 

 

기로재신 단체 사진